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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4112113417137272&outlink=1
편집자주|모두 기술개발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기술을 통한 혁신만이 살길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와 기업의 문화는 기술이 꽃필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을까. 새로운 기술을 수용하고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문화와 환경을 만들고 있을까. 사람들의 삶을 즐겁게 만들고 더욱 쉽고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을 만들어내려면 지금 우리의 생각과 생활의 스타일부터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닐까.
국내 소프트웨어(SW) 엔지니어의 처우와 위상이 낮다. 한국의 SW 업계에는 세계적 추세와는 다르게 진화한 갈라파고스 현상이 많은데, 그 중의 하나가 SW 엔지니어의 열악한 처우와 위상이다. 2014년에 US뉴스(U.S.News)가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100개 직종을 조사했는데, SW 관련 직종인 SW 엔지니어와 시스템 분석가가 1~2위를 차지했다. 반면에 국내에서 SW는 오랫동안 3D 업종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SW가 국가 경쟁력의 핵심 기술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실리콘밸리에서는 SW 엔지니어의 고연봉이 지역 물가를 상승시키고 외국 엔지니어들이 많이 유입되면서 타 직종에 근무하는 토박이 주민들이 상대적 박탈감에 화가 나 샌프란시스코에서 구글 통근버스에 돌을 던지고 시위하는 현상까지 벌어졌을 정도이다. 부러움을 넘어서 질시의 대상이니 그 위상을 알 만하다.
처우나 위상에서 금전적인 보상이 중요할 수도 있지만 연봉은 회사에서 인재를 채용하거나 유치하는데 핵심 조건은 아니다. 실리콘밸리에 진출한 국내 대기업들이 연봉을 아무리 높게 줘도 외국인들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전 세계 기업 평가 사이트(www.glassdoor.com)에서 외국인들이 국내 대기업들을 어떻게 평가하는 지를 읽어보면 직원의 만족도에는 연봉보다 조직과 문화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우나 위상은 겉으로 나타난 증상에 불과하다. 증상만을 치료해서는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 증상의 원인을 찾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지금까지 국내 SW 업계가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발전이 더딘 이유도 SW의 본질을 모른 채 증상만을 치료하기 위한 단기적인 대응책을 써 왔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SW 엔지니어의 고연봉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주민들이 구글 통근버스에 시위하는 일도 있었다.
제조업 관리 문화서 좋은 SW 안 나와
국내 SW 문제의 근본 원인을 밝히고, 실리콘밸리와의 차이점을 비교해 보고, 해결책이 무엇인지 문화, 회사와 조직, 경영자, 개발자, 개발방식 등 여러 관점에서 살펴보자. SW는 인류역사상 가장 복잡한 지식산업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지식산업의 특성을 가장 많이 지니고 있어야 하고 반대로 노동집약산업적인 특성은 가장 적어야 맞을 것이다. 지식산업의 특성은 두뇌를 쓰는 창의성이 생산성에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의 정책이나 회사의 경영방식에서 지식산업적인 요소를 거의 볼 수 없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제조업에서 익힌 관리 위주의 노동집약산업 방식으로 발전돼 왔다. 제조업 중심에서 지식산업으로의 갑작스런 전환이 어려운 이유다. 지식산업의 본질에 위배된 제조업 관리문화에서는 좋은 SW를 기대할 수 없다. 모차르트나 톨스토이를 관리만 잘한다고 좋은 음악이나 소설이 나올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SW 공학에서는 개발자 간의 편차가 28배 난다고 했고, 페이스북의 창업자인 마크 주커버그는 “한 명의 뛰어난 개발자가 다른 개발자 100명보다 낫다”고 말했다. 생산성의 큰 편차는 지식산업의 특성이기도 하다. 노동집약산업이라면 개인 간에 몇 십 배씩 차이가 날 수 없다. 지식산업에서는 개인 간 역량의 편차를 인정해야 한다. 인위적인 대규모 인력양성 같은 인기영합이나 평준화 정책이 일시적으로 인기를 얻을지는 모르겠지만 지식산업의 모습은 아니다.
지식산업은 당연히 전문성을 기본으로 한다. 불행히도 국내에서는 기술전문가로서의 경로가 없다. 국내에서 환갑이 넘은 개발자를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비전문가인 관리자에 집중된 무소불위의 결정권은 기술전문가에게는 실망과 좌절의 가장 큰 원인이다. 이는 노동집약산업의 관리행태이지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지식산업의 특성은 아니다.
국내에서는 지금까지 똑같은 불평에 똑같은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똑같은 정책을 펴 왔다. 아인슈타인은 “똑같은 방식으로 되풀이 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한다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했다. 본질을 무시한 정책이라는 면에서는 지금까지 나왔던 정책은 모양만 달랐지 같은 정책이었다. 아인슈타인은 또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그 문제가 발생했을 때와 동일한 이해력 수준에서는 절대 나오지 않는다”라고 했다.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들이 그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해도 혁신적인 정책은 나오지 않는다. 제조업에서 성장한 주역들이 지식산업의 본질을 진정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가끔 소수의 선각자들을 보기도 하지만 기득권층의 강력한 카르텔을 변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문화적으로는 국내의 공감대 위주의 문화가 창의성을 방해해 왔다. ‘고객위주’라는 그럴듯한 주장이 바로 창의성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당장은 고객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미래를 위해서 소신 있게 제품을 만들고 나중에 성공하는 것이 선각자의 모습이다. 스티브 잡스는 사용자 대표들의 모임인 포커스 그룹 미팅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만일 이에 의존했다면 애플의 혁신적인 제품들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고객 자신들보다도 고객들을 더 잘 알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보다 단 한 명의 전문가의 통찰력이 중요하다. 다수결은 선호도를 조사할 때 사용하는 것이지 정책을 결정할 때는 옳은 방법이 아니다. GE 잭 웰치도 직원들이 반대하는 감원 정책을 펴왔지만 가장 존경 받는 경영자로 알려져 있다. 인기 영합주의와 공감대 위주의 사회 분위기에서는 창의성이 발휘되기 어렵다.
비용평가와 가치평가는 노동집약산업과 지식산업의 대표적인 차이다. SW의 가치를 용역개발의 시간비용으로 산정하는 것이 국내의 관행이다. 톨스토이의 소설의 가치를 집필에 소요된 시간으로 계산하는 것과 같다. 불행히도 국내 모든 SW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간비용 방식으로 계약된다. 책상에 앉아서 일한다 뿐이지 시간제 근로자와 다를 바 없다. 비용이 아닌 가치로 SW를 평가할 수 있는 역량이 없다는 것은 인정하기 싫은 어두운 현실이다. 그러니 개발자 등급이라는 황당한 개념이 나오고 SW 업계에서는 천재 1명보다 바보 2명을 투입하는 것이 개발 비용을 더 많이 청구할 수 있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다.
SW 엔지니어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직종으로 자리 잡았지만, 국내에서는 오랫동안 3D 직종이라는 오명을 떠안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6월 서울시가 개최한 IT개발자를 위한 청책토론회 모습. 이 자리에 참석한 개발자들은 열악한 근무여건 등 SW 분야의 문제점을 제기했다.
이런 노동집약산업적인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다 보니 개발자들도 창의성을 발휘할 수 없고 전문성 없는 관리자가 시키는 대로 일하다 보니 역량도 정체되고 잘 돼야 오래된 숙련공 같은 상황이 돼버렸다. 여러 문제가 종합적으로 작용해 이런 상황이 됐지만 근본 원인은 하나다. 지식산업이라는 본질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와 한국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문화다. 협업문화는 개발자들의 역량을 향상시키고 제품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협업은 투명성이 전제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개방과 공유를 요구한다. 세계 최고의 개발자들이 모여서 일하는 실리콘밸리는 서로 공유하고 돕고 가르쳐 주면서 일하기 때문에 발전도 빠르다.
국내에서는 공유하지 않는 비밀주의가 직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유지하는 안전한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그런 폐쇄적인 문화 때문에 글로벌 시장에는 없지만 국내에서만 생존할 수 있는 제품이 생겨난다. 특히 어설픈 보안 제품들이 많다. 갈라파고스 섬에서 살면서 창의성이라고 포장할 수는 없다. 회사의 차이를 비교하기 위해 ‘귤화위지’라는 춘추전국시대의 속담을 보자. 귤을 강남에 심으면 귤이 되지만 강북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뜻으로 토양이 중요하다는 속담이다. 한국의 개발자가 실리콘밸리 회사에 가면 맛있는 귤이 되고 실리콘밸리의 외국 개발자가 한국의 회사에 오면 맛없는 탱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필자가 실리콘밸리에 있을 때도 많은 한국 개발자가 미국 회사에 와서 일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반대로 외국의 개발자가 한국 회사에 와서 일하는 유일한 동기는 연봉이다. 그들과 인터뷰를 해보면 회사의 관리에 대해 불만이 많다. 자기의 전문성과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하기도 한다. 회사가 문제라는 얘기다.
백발의 개발자 없는 한국
실리콘밸리의 회사에는 백발이 성성한 개발자가 많다. 스티브 워즈니악, 마이크로소프트의 최고기술책임자(CTO)였던 레이 오지, 빅데이터의 핵심기술의 창시자인 더그 커딩 등 모두 환갑을 전후한 나이에도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엔지니어로 활동하고 있다. 신생 벤처회사가 아닌 이상 백발이 성성한 엔지니어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은 회사에는 큰 리스크이다. 젊은 병사들만으로 전쟁을 하겠다는 것과 같다. 외국인 직원들에게는 한국 회사 경영자나 관리자들이 불만의 대상이다. 전문성 없는 경영자의 결정에 의해 비합리적인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공무원, 언론, 회사 할 것 없이 전문성보다는 수평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중시한다.
반면에 실리콘밸리는 수직적인 전문성이 없이는 어떤 분야에서도 생존할 수 없다. CTO와 같은 최고 전문가와 즐겁게 일하던 외국 엔지니어들이 국내 경영진들과 대화가 안 통하는 것은 당연하다. 중요한 결정들이 무지한 경영자에 의해서 잘못 결정되는 것을 보는 것은 그들이 좌절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미국회사에서 CTO라면 기술전략은 기본이고 해박한 실무 지식을 가지고 엔지니어들을 가이드 하지만 국내 CTO는 수많은 관리자 중의 하나일 뿐이다. 외국에서 CTO라는 명함을 주고 잠깐 대화를 하게 되면 CTO가 아니라는 사실에 상대방이 황당해 할 것이다.
전문성 없는 관리자 판단에 개발자 좌절
개발자 역량의 판단기준 또한 실리콘밸리와 한국의 차이점 중 하나다. 국내는 도구 사용경험에 대한 역량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반면에 실리콘밸리는 창의성과 문제 해결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구글과 면접한 한국 개발자의 유명한 이야기도 있다. 자바 엔지니어를 뽑는데 인터뷰 때 자바는 물어보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자바나 C++ 같은 언어를 경험해 보았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도구와 상관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응용력과 창의성이 중요한 것이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속담과 같다. 붓 자루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국내 엔지니어의 화려한 이력서는 전혀 의미가 없다. 개발자를 보는 관점이 다르니 면접 방법도 많이 다르다. 개발방식은 전문성 위주로 개발하는 것이 실리콘밸리 방식이고 1인 만능주의로 한 지붕 아래 수많은 장인들이 각각 모든 일을 처리하는 가내 수공업적인 형태가 한국의 방식이다. 분석, 설계, 구현과 같이 전문성과 일의 가치에 따라 분리해서 수행하는 것이 실리콘밸리 방식이고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수행하는 것이 국내 방식이다.
당연히 비효율적이다. 업계에서는 분할발주라는 이름으로 단계별로 발주를 하려는 노력이 있지만 지금은 위험한 발상이다. 전문 인력이 없는 상태에서 시도했다가는 부작용이 더 크다. 역량을 기르는 것이 우선이다. SW는 창의성이 가장 중요한 역량인 지식산업이다. 창의성은 제품의 기획부터 개발까지 모든 과정에서 훌륭한 SW 개발을 위해 필수적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 SW 산업에서 지식산업의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SW 엔지니어의 처우나 위상을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창의성 있는 지식활동을 할 수 있는 생태계가 필요하다. 지식산업의 본질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쉽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실행을 해야 할 때다.
문화는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요소다. 한국사회는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신뢰가 깨져 있다. 회사에서도 경영자와 개발자가 서로 신뢰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관리 위주로 운영한다. 관리가 중심인 회사는 SW에 적합하지 않다. 창의성 있는 문화가 바로 글로벌 제품을 만드는 문화다. 상호 간의 신뢰 하에 자유로우면서도 공유, 개방, 협업하는 문화가 훌륭한 SW의 토양이다.
지금까지 SW분야에 대한 정부와 회사의 정책은 제조업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것 같은 정책이 많았다. 지식산업으로의 변화를 위해서는 인기나 공감대에 연연하지 않는 혁신적인 정책들을 필요로 한다. 구체적으로 다양한 정책이 필요하겠지만, 지식산업의 본질을 지키는 것이 핵심이다.
개발자들은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 잡동사니 기술 수집가와 같은 취미활동을 자제하고 분석과 설계와 같은 핵심 개발역량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깊이 없는 경험은 아무리 경력이 많아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하루 일과를 분석해 보면 의외로 많은 단순 노동일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인식하고 변화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떤 일을 하건 항상 지식산업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전문가답게 일한다면 백발이 성성한 개발자도 될 수 있다. 처우와 위상은 덤이다.
글 김익환 에이비시텍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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